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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제안을 거절한 기도하는 화가-프라 안젤리코

by 페즈디스펜서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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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

🔹 디스크립션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95?~1455)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신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신성하고 고요한 작품을 남긴 인물입니다.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였으며,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한 후 ‘프라 안젤리코’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경건한 작품만큼이나 흥미로운 일화와 숨겨진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기도부터 했던 화가?”
“교황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한 이유는?”
오늘은 프라 안젤리코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 ‘기도하는 화가’ – 붓을 들기 전에 무릎을 꿇다

프라 안젤리코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수도사이자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그림을 그리기 전 항상 기도를 드리고, 작품을 통해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 기도와 예술의 조화

  • 그림을 그리는 것은 기도의 연장선: 그는 “내가 그리는 모든 것은 신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 작업실은 작은 성당: 작업 공간에서도 찬송가를 부르며 작업했다고 전해집니다.
  • ‘말 대신 그림으로 전도하는 수도사’: 그는 설교 대신 그림으로 사람들의 신앙심을 깨우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 자신의 서명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모든 것은 나의 작품이 아니라 신의 영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 교황의 제안을 거절한 화가 – “나는 더 높은 분을 섬깁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명성이 퍼지자, 교황 에우제니오 4세(Eugene IV)는 그를 바티칸의 수석 화가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프라 안젤리코는 이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 이유는 무엇일까?

  • 겸손한 수도사로 남고 싶어서: 그는 “나는 세속의 권력보다 신의 일을 더 소중히 여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단순한 삶의 철학: 화려한 바티칸보다 소박한 수도원 벽화 작업을 더 선호했습니다.
  • 결국 받아들인 요청: 그러나 나중에는 교황 니콜라우스 5세의 간청으로 바티칸에서 ‘성 라우렌티우스의 순교’ 벽화를 그리게 됩니다.

💡 흥미로운 포인트: 교황은 그에게 로마의 대주교직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프라 안젤리코는 또 한 번 정중하게 거절하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는 이미 하늘의 왕국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산 마르코 수원의 벽화

 

3. 프레스코의 마법사 – ‘빛과 색채로 기도를 그린다’

프라 안젤리코는 프레스코화(Fresco) 기법의 대가로, 빛과 색채를 통해 성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 대표작: 산 마르코 수도원의 벽화

  • ‘수태고지(Annunciation)’: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예수 탄생 소식을 듣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 빛의 활용: 빛이 천사와 성모에게 은은하게 퍼지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단순하지만 깊은 감동: 화려한 장식보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 산 마르코 수도원의 방마다 작은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수도사들이 기도할 때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배치된 것입니다.
일종의 “벽에 그린 성경”이라고 볼 수 있죠.

4. 프라 안젤리코 vs 프라 필리포 리피 – 수도사 화가들의 엇갈린 삶

프라 안젤리코와 동시대의 또 다른 유명한 수도사 화가,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정반대의 성격으로 유명했습니다.

📌 두 수도사의 차이

  • 프라 안젤리코: 경건하고 겸손한 삶을 살며,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작품에 몰두했습니다.
  • 프라 필리포 리피: 예술적 열정이 넘쳐 수도원 규율을 무시하고 사랑에 빠진 반항적인 화가였습니다.
    실제로 수도원에서 탈출해 수녀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았죠.

💡 흥미로운 포인트: 두 사람은 성격이 달랐지만, 서로의 작품을 존경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프라 안젤리코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필리포의 그림은 세속적이지만, 그 안에도 신의 숨결이 느껴진다.”

5. ‘신의 영감을 받은 손’ – 전설처럼 전해지는 일화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너무나 완벽해서, 사람들은 그가 신의 도움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 전설 같은 이야기들

  • 수정 없는 그림: 그는 한 번 그리기 시작하면 수정 없이 한 번에 완성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 잠든 사이에 완성된 그림: 전설에 따르면, 그가 잠든 사이 천사가 내려와 그의 손을 움직여 그림을 완성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영혼을 담은 붓: 그의 동료 수도사들은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안젤리코의 붓끝에는 물감이 아닌 기도가 담겨 있다.”

💡 재미있는 사실: 이러한 전설들 때문에, 그는 죽은 후에도 ‘축복받은 화가(Beato Angelico)’라는 칭호로 불렸으며,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결론 – 신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

프라 안젤리코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신과 교감한 ‘성화(聖畵)의 화가’였습니다.

  •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며, 작품을 신앙의 표현으로 여겼다.
  • 교황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할 정도로 겸손하고 신실한 수도사였다.
  • 프레스코화의 대가로, 빛과 색채를 통해 영적인 감동을 전달했다.
  • 프라 필리포 리피와는 대조적인 삶을 살면서도 서로의 예술을 존중했다.
  • 죽은 후에도 ‘축복받은 화가’로 기억되며, 오늘날까지 경건한 영감을 주고 있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 미술관과 수도원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그는 여전히 “신과 가장 가까운 화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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