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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다비드상을 만든 예술가-도나텔로

by 페즈디스펜서 2025.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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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텔로

 

🔹 디스크립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  [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이탈리아어: 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1386년경 ~ 1466년 12월 13일) ]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조각의 혁명가’ 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조각계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법을 도입해 미술사를 바꿔 놓았으며, 특히 그의 대표작 다비드상(David) 은 미켈란젤로보다 100년 먼저 제작된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도나텔로는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화난 손님에게 조각을 던지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메디치 가문과도 특별한 인연 을 맺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도나텔로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1. 도나텔로 vs 손님 – ‘맘에 안 들면 부숴버릴 거야!’

도나텔로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님이 자신의 작품을 무시하는 걸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 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유한 고객이 도나텔로에게 예수 조각상 을 의뢰했습니다. 몇 달 후, 도나텔로는 정성스럽게 작품을 완성했지만, 손님은 이를 보고 “너무 거칠고 무섭다” 라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 도나텔로는 그 자리에서 조각을 바닥에 내던져 부숴버리며, “그럼 당신이 직접 만들어 보시죠!” 라고 말했습니다.
✔ 이 소문이 퍼지면서, 도나텔로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돈도 마다하는 괴짜 예술가’ 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결국, 이 사건 이후 도나텔로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고려해 절대 불평하지 않았다 고 합니다.


도나텔로의 다비드상

2. 최초로 ‘다비드상’을 만든 사람은 미켈란젤로가 아니다?

우리가 ‘다비드상’ 하면 보통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최초로 다비드상을 만든 사람은 도나텔로 였습니다.

📌 도나텔로의 다비드상(1440년경)

서양 최초의 완전한 누드 동상 – 중세 시대에는 누드 조각이 거의 금기였지만, 도나텔로는 이를 깨고 다비드를 ‘완전한 인간’ 으로 묘사했습니다.
청동으로 제작 –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다비드상보다 훨씬 먼저 등장한 혁신적인 조각.
우아하고 중성적인 분위기 – 미켈란젤로의 강인한 다비드와 달리, 도나텔로의 다비드는 섬세하고 신비로운 표정 을 짓고 있음.

이 작품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주문한 것으로, 르네상스 조각의 새 시대를 연 작품 으로 평가받습니다.


3. 도나텔로와 메디치 가문 – ‘특별한 친구’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과 깊은 관계 를 맺고 있었습니다. 특히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와 매우 친한 사이였으며, 이 관계 덕분에 피렌체에서 최고의 조각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도나텔로는 코시모가 죽었을 때 너무 슬퍼하며 조각 작업을 중단할 정도 로 메디치 가문에 의존했음.
✔ 메디치 가문은 도나텔로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돈 걱정을 하지 않도록 지원 해 줌.
✔ 도나텔로는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자주 머물며, 그곳에서 자신의 예술 철학을 발전 시킴.

결국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도나텔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각 스타일을 확립 할 수 있었습니다.


4. 도나텔로는 왜 무덤을 걷어찼을까?

도나텔로는 성격이 급하고 다소 괴팍한 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회의 무덤을 조각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작업 도중 자신의 조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 화가 난 도나텔로는 무덤을 발로 걷어차 버리며 작업을 중단 했습니다.
✔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도나텔로는 “이 무덤은 내 예술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그는 더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조각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5. 도나텔로의 마지막 – “내가 부족한 조각가였다고?”

도나텔로는 80세가 넘도록 조각을 계속했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 그는 죽기 전 "나는 아직도 부족한 조각가다" 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음.
✔ 하지만 오늘날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조각의 아버지 로 불리며,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님.
✔ 그의 유언에 따라, 가장 가까웠던 친구 코시모 데 메디치의 곁에 묻힘.

그가 떠난 후, 피렌체 사람들은 “도나텔로가 없었다면, 르네상스 조각도 없었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결론 – 르네상스 조각의 혁신가, 도나텔로

도나텔로는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을 개척한 혁신적인 예술가 였습니다.

손님이 불평하면 작품을 내던질 정도로 고집이 강했다.
미켈란젤로보다 100년 먼저 ‘다비드상’을 만든 원조 조각가였다.
메디치 가문의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최고의 조각가로 성장했다.
예술적 기준이 너무 높아 스스로 만든 무덤을 걷어차기도 했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부족한 조각가라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조각의 ‘최고의 개척자’ 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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