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크립션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 [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이탈리아어: 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1386년경 ~ 1466년 12월 13일) ]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중 한 명으로, ‘조각의 혁명가’ 라 불리는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조각계에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기법을 도입해 미술사를 바꿔 놓았으며, 특히 그의 대표작 다비드상(David) 은 미켈란젤로보다 100년 먼저 제작된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도나텔로는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화난 손님에게 조각을 던지기도 했으며, 당대 최고의 부자였던 메디치 가문과도 특별한 인연 을 맺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도나텔로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1. 도나텔로 vs 손님 – ‘맘에 안 들면 부숴버릴 거야!’
도나텔로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예술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손님이 자신의 작품을 무시하는 걸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 이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유한 고객이 도나텔로에게 예수 조각상 을 의뢰했습니다. 몇 달 후, 도나텔로는 정성스럽게 작품을 완성했지만, 손님은 이를 보고 “너무 거칠고 무섭다” 라며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 도나텔로는 그 자리에서 조각을 바닥에 내던져 부숴버리며, “그럼 당신이 직접 만들어 보시죠!” 라고 말했습니다.
✔ 이 소문이 퍼지면서, 도나텔로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돈도 마다하는 괴짜 예술가’ 라는 명성을 얻게 됩니다.
결국, 이 사건 이후 도나텔로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사람들은 그의 성격을 고려해 절대 불평하지 않았다 고 합니다.
2. 최초로 ‘다비드상’을 만든 사람은 미켈란젤로가 아니다?
우리가 ‘다비드상’ 하면 보통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르네상스 최초로 다비드상을 만든 사람은 도나텔로 였습니다.
📌 도나텔로의 다비드상(1440년경)
✔ 서양 최초의 완전한 누드 동상 – 중세 시대에는 누드 조각이 거의 금기였지만, 도나텔로는 이를 깨고 다비드를 ‘완전한 인간’ 으로 묘사했습니다.
✔ 청동으로 제작 –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다비드상보다 훨씬 먼저 등장한 혁신적인 조각.
✔ 우아하고 중성적인 분위기 – 미켈란젤로의 강인한 다비드와 달리, 도나텔로의 다비드는 섬세하고 신비로운 표정 을 짓고 있음.
이 작품은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 주문한 것으로, 르네상스 조각의 새 시대를 연 작품 으로 평가받습니다.
3. 도나텔로와 메디치 가문 – ‘특별한 친구’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최고의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과 깊은 관계 를 맺고 있었습니다. 특히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와 매우 친한 사이였으며, 이 관계 덕분에 피렌체에서 최고의 조각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 도나텔로는 코시모가 죽었을 때 너무 슬퍼하며 조각 작업을 중단할 정도 로 메디치 가문에 의존했음.
✔ 메디치 가문은 도나텔로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돈 걱정을 하지 않도록 지원 해 줌.
✔ 도나텔로는 메디치 가문의 저택에 자주 머물며, 그곳에서 자신의 예술 철학을 발전 시킴.
결국 메디치 가문의 후원 덕분에 도나텔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각 스타일을 확립 할 수 있었습니다.
4. 도나텔로는 왜 무덤을 걷어찼을까?
도나텔로는 성격이 급하고 다소 괴팍한 면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교회의 무덤을 조각하는 작업을 맡았는데, 작업 도중 자신의 조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 화가 난 도나텔로는 무덤을 발로 걷어차 버리며 작업을 중단 했습니다.
✔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도나텔로는 “이 무덤은 내 예술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후 그는 더 완벽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조각을 시작 했다고 합니다.
5. 도나텔로의 마지막 – “내가 부족한 조각가였다고?”
도나텔로는 80세가 넘도록 조각을 계속했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 그는 죽기 전 "나는 아직도 부족한 조각가다" 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음.
✔ 하지만 오늘날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조각의 아버지 로 불리며, 그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님.
✔ 그의 유언에 따라, 가장 가까웠던 친구 코시모 데 메디치의 곁에 묻힘.
그가 떠난 후, 피렌체 사람들은 “도나텔로가 없었다면, 르네상스 조각도 없었다” 라고 평가했습니다.
결론 – 르네상스 조각의 혁신가, 도나텔로
도나텔로는 단순한 조각가가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을 개척한 혁신적인 예술가 였습니다.
✔ 손님이 불평하면 작품을 내던질 정도로 고집이 강했다.
✔ 미켈란젤로보다 100년 먼저 ‘다비드상’을 만든 원조 조각가였다.
✔ 메디치 가문의 강력한 후원을 받으며 최고의 조각가로 성장했다.
✔ 예술적 기준이 너무 높아 스스로 만든 무덤을 걷어차기도 했다.
✔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부족한 조각가라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도나텔로는 르네상스 조각의 ‘최고의 개척자’ 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