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스크립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로, 다비드상, 피에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괴팍한 성격, 엄청난 근성, 그리고 독특한 삶을 살았던 인물 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평생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고, 자신의 걸작을 싫어했으며, 라이벌들과의 신경전이 대단했던 화가 였습니다. 오늘은 미켈란젤로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소개합니다.
1. 미켈란젤로는 목욕을 싫어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에는 엄청난 열정을 가졌지만, 위생 관념은 거의 없었다 고 합니다. 그는 작업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거의 씻지 않고, 옷도 거의 벗지 않았다 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의 조수들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 “그는 옷을 입은 채로 자고, 옷을 거의 벗지 않았다. 심지어 부츠도 몇 달간 벗지 않아 살이 부츠에 붙어 있었다.”
✔ “목욕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물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를 작업할 때도 4년 동안 제대로 씻지 않고, 작업장에 먹고 자며 생활 했다고 합니다.
2. 라이벌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의 신경전
르네상스 시대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라이벌 이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성격과 예술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자주 대립했습니다.
📌 두 천재의 차이점
✔ 다빈치 – 세련되고 우아한 성격, 과학과 미술을 결합한 작품 제작, 신비로운 미소의 모나리자 같은 작품을 그림.
✔ 미켈란젤로 – 거칠고 고집이 세며, 엄청난 근력으로 대리석을 깎아 조각을 만들었고, 강한 감정을 담은 작품을 제작.
어느 날, 두 사람이 피렌체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 귀족들이 다빈치에게 “단테의 <신곡> 중 어려운 부분을 해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빈치는 난처해하며 미켈란젤로를 가리키며 “저 친구가 해석을 더 잘할 겁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미켈란젤로는 다빈치를 노려보며 “당신은 말을 시작했다가 끝도 못 내는 사람 아닌가?” 라고 비꼬았고, 다빈치는 화가 나서 자리를 떠나버렸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를 혐오하며 경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3.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며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는 1508~1512년 동안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은 그에게는 끔찍한 고통과 인내의 과정 이었습니다.
✔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원래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에게 벽화를 그리도록 강요 했음.
✔ 미켈란젤로는 "나는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다!" 라며 거절했지만, 결국 강제로 작업하게 됨.
✔ 그는 천장에 4년 동안 누워서 그림을 그렸으며, 결국 목과 등이 심하게 휘어버렸음.
미켈란젤로는 이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나는 이미 고문을 당한 것처럼 허리가 휘어버렸다.”
✔ “얼굴이 계속 천장을 향하고 있어서 그림이 눈에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천장화를 그린 후 그는 다시는 회화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 했지만, 결국 20년 뒤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 벽화까지 그리게 됩니다.
4. 다비드상의 ‘너무 큰 손과 머리’ – 의도된 왜곡?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David) 은 르네상스 최고의 조각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보면 머리와 손이 유난히 크다 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실제로 다비드상의 머리와 손은 몸 비율에 비해 더 큼.
✔ 이유는? 원래 다비드상은 높은 곳(건물 위쪽)에 설치될 예정 이었기 때문!
✔ 위에서 내려다볼 때 비율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일부러 머리와 손을 크게 조각 했다고 합니다.
결국 다비드상 은 피렌체 시내에 세워졌지만, 여전히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계산이 반영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5.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을 싫어했다?
미켈란젤로는 놀랍게도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고 합니다.
✔ 피에타 를 완성했을 때, 한 예술가가 “이 작품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미켈란젤로는 밤에 몰래 작품에 자기 이름을 새겼다 고 전해짐.
✔ 모세상(Moses) 을 조각한 후, 너무 사실적으로 보여서 미켈란젤로가 조각상에게 “이제 말을 해라!” 라고 외치며 망치로 내리쳤다고 함.
그는 자신의 조각들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해 완성하지 않은 작품도 많았으며, 심지어 일부는 부숴버리기도 했습니다.
6.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순간 – 가난하게 생을 마감하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에서 가장 성공한 예술가 중 한 명 이었지만, 정작 그는 매우 검소하고 돈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친구조차 많지 않았다.
✔ 부유했지만, 낡은 옷을 입고, 초라한 집에서 홀로 살았다.
✔ 돈을 거의 쓰지 않았고, 대부분 기부하거나 숨겨 두었다.
그의 마지막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Ancora imparo.)
✔ “나는 신과 더 가까워지길 원한다.”
미켈란젤로는 1564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 중 가장 장수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결론 – 르네상스의 완벽주의자,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단순한 화가나 조각가가 아니라, 완벽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노력가 였습니다.
✔ 목욕을 거의 하지 않고, 예술에만 집중했다.
✔ 다빈치와의 라이벌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
✔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면서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 자신의 작품을 싫어하면서도,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품을 남겼다.
✔ 88세까지 장수하며 예술의 길을 걸었다.
그의 삶은 예술을 향한 끝없는 집착과 노력의 결과였으며, 오늘날까지도 ‘예술가의 정점’ 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